[로봇저널리즘 신문사=김지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 인사말씀 】

한성대학교 여러분, 안녕하세요!

화창한 봄날, 젊음과 활력이 넘치는 ‘한성인’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한성대 캠퍼스가 무척 아름다운 것 같고, 상상관에 잠시 올라 주변 전경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외교는 외교관과 정부 관리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가야하는 외교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젊은 여러분들과 대화를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무를 보니 얼마 전 읽었던 책 한권이 떠오릅니다.「나무들의 숨겨진 삶」, 영어로는 「The Hidden Life of Trees」라는 책입니다. 숲 속의 나무들도 뿌리를 통해 서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소통’한다고 합니다. 큰 나무는 어린 나무들이 잘 클 수 있도록 ‘보호’하면서 다음 세대를 ‘교육’ 시킵니다. 그러다 이 큰 나무가 번개나 태풍 등으로 생을 마감하면, 어린 나무들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생태계가 수백, 수천 년 이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숲 속 나무들 이야기지만, 우리들 이야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도 서로를 위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즉, 서로에게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사는 것’이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도 여기계신 한분 한분에게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주제인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평화의 가치와 의미 】

저는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유엔에서 10년간 인권과 인도지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때 미얀마, 수단,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예멘과 같이 재난과 분쟁 위기에 처한 현장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그 곳에서 인권이 유린되고, 모든 것을 잃고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전쟁의 처참함은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지만,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의 깊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참혹함 속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애와 인간의 존엄도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2월, 오랜 내전 끝에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제가 유엔에서 긴급구호 업무를 맡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부족간, 무장세력간 갈등으로 진정한 평화가 멀기만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중에 반정부 무장세력이 장악한 지역의 한 난민촌을 찾았습니다. 유엔에서 여성 고위직이 방문했다고 하니 오랜 내전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깡마른 중년 아낙네들이 줄을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듯한 노인분에게 제가 인사를 건네니, “안녕하십니까. 댁의 아이들도 잘 지내시나요?” 라고 답을 하더군요. 도움과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이 노인은 예의를 갖추신 것입니다. 절박한 굶주림 속에서도 예의를 지키는 그 노인의 얼굴에서 저는 인간의 존엄을 보았습니다.

또 난민촌 옆 헬기장 공터에서는 남자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공은 진흙 덩어리를 둥글게 다듬은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도 노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아이들의 천진함에 또 한 번 감격했습니다.

이처럼, 난관과 위기 속에서도 뚜렷하게 빛나는 것이 인간의 존엄입니다. 이 존엄성은 인권과 인도지원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수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 남수단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이 더욱 더 참혹한 내전으로 치달았고, 많은 국민이 굶주림과 질병, 인권유린을 피해 국경을 넘고 주변국에서 난민으로 어렵게 연명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는 강대국간 이해가 대치되면서 남수단, 시리아, 예멘 등지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보리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일차적 책임” 이라는 유엔헌장이 부여한 가장 중차대한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이유 】

사실, 어릴 적 제게 ‘평화’는 그저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의미로 다가왔었습니다.

저는 1950~60년대 아직 한국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른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혹시 오늘 밤 폭격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다 잠들곤 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오늘날 한반도는 많이 안정되고, 발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전쟁과 분단, 갈등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70년 가까이 정전체제 하에서 불안하게 지켜온 불완전한 평화를 항구적인 완전한 평화체제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다른 지역의 분쟁 이후 평화프로세스와 다릅니다. 단지 70년 동안 이어진 분쟁의 유산을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까지 이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향한 우리의 길이 그만큼 멀고도 험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1년 전 우리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여정을 이어나가 반드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 판문점 선언 1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평화, 함께 잘 사는 한반도”를 꼭 만들어가야 합니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100년 전 우리는 잃어버린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 이후에 전쟁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은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해서 반드시 한반도에서 더 큰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이뤄내는 일은 궁극적으로 여러분들의 미래를 여는 일이기도 합니다.

【 평화를 유지하고, 회복·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

그러면 과연 평화는 어떻게 유지하고, 또 깨진 평화는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그 실마리를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사례들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저는 ‘아랍의 봄’을 겪었던 튀니지와 시리아 두 나라를 보면서,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저력’과 그 바탕이 되는 ‘교육의 힘’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아랍의 봄’은 2010년 말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아랍 전역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민주화가 실패하고, 내전이 일어나거나 또는 더 억압적인 정치체제가 들어섰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랍의 봄의 개막을 알린 튀니지는 어려운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고 민주국가의 기초를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리아는 8년 넘게 계속된 내전으로 그야말로 온 나라가 다 폐허가 됐습니다.

물론, 강대국간의 이해관계나, 지정학적 요인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주요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저력’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전환기의 혼란이 폭력적 분쟁으로 치닫지 않고 평화적인 사회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가능케하는 그 사회의 “회복력” (영어로는 resilience)은 바로 시민사회의 저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력을 갖춘 시민사회의 시작점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받은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조직화된 시민사회는 국민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나라가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 도전이나 갈등을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내고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범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튀니지가 그 지역에서 교육열이 높다고 알려진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튀니지는 1956년 독립 초기부터 교육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이는 벤알리 대통령의 오랜 독재 시절에도 저버리지 않은 국가적 이념이었습니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국민 4자 대화기구’를 출범시켰습니다. 독재 정권이 축출된 이후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이 대화기구 덕분에 통치체제가 억압적 권위주의로 돌아가지 않고, 시민사회와 함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공로로 4자 대화기구는 2015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시리아에서는 비판이나 소수의 목소리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독재체제 아래에서 시민사회가 자라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조직화된 시민운동의 기초는 없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랍의 봄에 고무된 시리아 국민들도 2011년 초 자유과 인권을 요구하며 평화적 시위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대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권의 폭압은 더욱 더 심해졌고, 결국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시민들도 무장을 하게 되면서 시리아는 내전으로 치달았습니다. 그 혼돈과 파괴의 가운데에서 IS와 같은 극단적 세력들이 자라나면서 시리아와 주변국의 많은 지역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IS는 장악한 지역들을 모두 잃고 다시 무장 테러집단으로 세력이 위축되었지만, 그 파괴력은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테러 공격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시리아 국민에게 진정한 평화가 올 날은 요원해보입니다.

둘째, 평화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비전과 결단, 그리고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소통과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에서는 반세기 넘게 이어진 정부와 무장혁명군(FARC) 사이의 내전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작년 9월에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20년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오랜 기간 여러 갈등 요인들이 엉켜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그 분쟁의 실타래를 푸는 데는 ‘지도자의 결단과 의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콜롬비아 ‘산토스’ 대통령이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평화협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평화협정의 이행과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최근에 집권한 ‘아비’ 총리 역시, 뿌리 깊은 종족갈등을 화합하려는 노력과 함께 사회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곤 20년간 이어진 이웃 나라 에리트리아와의 반목과 국경분쟁을 공식적으로 끝냈습니다. 나아가 소말리아, 남수단 등 인근 국가들의 갈등 중재에도 나서면서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평화와 통합에까지 기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갈등을 평화로 변화시킨 지도자들의 힘, 그 저변에는 국민에 대한 헌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최근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감’과 ‘진정성’입니다.

제가 세계 곳곳의 분쟁과 외교 현장의 한복판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했던 것과도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소통과 공감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과도 연관됩니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표현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속으로 병들어 갑니다.

국민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없게 되면, 조직이나 사회, 국가도 결국은 병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국가든, 어떤 종류의 관계나 집단이든 간에,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평화를 만들어 내는 힘은 진정성 있는 소통, 그리고 공감 능력에 있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는,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입니다. 작년 말, ‘이코노미스트’지를 보다가 ‘시리아의 어느 한 작은 마을’이란 부고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기사는 수년간 시리아 정부군이 고향마을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실태를 세상에 알리던 어느 용기있는 활동가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용기는 있지만 이름없는 활동가였습니다.

그는 바로 눈앞에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고향,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작년 11월 23일, 그는 괴한의 총격을 받고 46세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분쟁의 현장에는, 이처럼 인간의 선함과 악함이 극명하게 공존합니다. 제가 눈물이 흔한 편은 아니지만, 분쟁의 현장의 선함에 압도되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2010년, 수단의 서쪽 ‘다르푸르’ 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정부군의 급습으로 마을이 불타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 먼지바람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서 제대로 된 천막 하나 없이 급히 구호활동을 나온 유엔기구와 NGO들 단체들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척박하고 위험한 곳에서 난민 등록과 식량, 식수 배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유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그 직원들은 저를 보자마자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본부에서부터 그 오지까지 찾아준 것이 정말 고맙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더 많은 동료들이 수단 정부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해 들어오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어서 빨리 합류해 더 많은 난민들을 도울 수 있도록 입국을 막고 있는 비자 문제를 수단정부를 상대로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직원들을 보면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그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인간성과 이타심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동안 고마움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또 한 번은 2014년 가을 터키 남부, 시리아와의 국경지역에 있는 유엔 인도지원조정 사무소와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수천 명의 난민들이 터키 정부와 유엔의 도움을 받으면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폭격 속에 팔다리를 잃은 아이들에게 의수와 의족을 만들어 주는 작은 병원이 있었습니다.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생기 없는 얼굴에는 트라우마와 두려움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 병원에 계신 단 한 분의 의사는 제게 정성과 열의를 다해 시설을 안내하고 설명하면서 국제사회의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아이들의 무표정 뒤에 숨은 공포의 그림자, 절망적 상황에 굴하지 않는 그 의사의 열정과 진심, 그리고 유엔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직접 보면서 저는 한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쟁의 현장은 지옥과도 같은 곳이지만, 그 곳에도 천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분쟁의 현장이라는 극한 상황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움직임으로 사회와 역사가 발전해 나간다고 믿습니다.

【 평화 추구를 위한 길,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당부 】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는 일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일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분야에 국한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최근 평화의 개념은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적극적 평화”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권, 양성평등, 차별철폐, 분쟁방지와 같은 일상의 가치들을 실현하는 일 모두가 궁극적으로 평화를 구현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유엔에서도 ‘평화·개발·인권’, 이 3대 축은 언제나 같이 가야한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평화가 없는 곳에 인권과 개발을 이룰 수 없고, 개발이 없는 곳에 인권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으며, 인권이 없는 곳에 지속가능한 개발과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여성과 아동, 노인,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입니다.

특히 집단 성폭력은 무장 세력들이 전술적으로 악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엔에서는 여성, 평화, 안보를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전시 성폭력 근절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작년에 ‘여성과 함께하는 평화’라는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정부는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유엔봉사단 파견 등을 지원하고 있고, ▲NGO, 시민사회,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도 다양한 ‘협력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나아가 차기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도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를 이루는 것입니다. 외교부는 주변국과 긴밀히 공조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어 나가는데 노력에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 정부나 외교관, 정치인, 국제기구나 NGO 직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소개해드린 ‘나무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노력을 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이렇게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전공, 각자가 관심을 가진 그 분야에서 매일 조금씩 ‘평화의 가치를 더하는 삶’을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학생 여러분들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주역입니다. 더 큰 대한민국, 더 평화로운 한반도, 더 넓어진 세계무대에서 여러분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 속 여러분들의 꿈과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같이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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